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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글

과민성대장증후군과 そして生活はつづく

4월의돌고래(프릴) 2018. 1. 18. 19:37

 호시노겐 에세이 번역: https://blog.naver.com/go_hiroshima/220936498833

 출처 : [내 맘대로 번역] 星野 源 そして生活はつづく|작성자 레나 신쌤 


 왜 이 글을 쓰려고 했는지 구구절절 적고 임시저장을 눌렀는데 글이 날아가 버렸다. 모든 의욕이 사라져버렸지만, 내가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임으로 기억을 더듬어 다시 써본다. 

 언젠가 과민성대장증후군에 대해 꼭 글을 쓰고 싶었다. 몇몇 문학작품에서 다룬 적도 있고, 9년이나 지속 되어오면서 엄청난 에피소드가 축척됐기 때문이다. 더하여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고, 공감 받고 싶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호시노겐의 에세이는 일본어 부족으로 읽을 수가 없어서 감사한분들이 번역해준 번역본으로 한편씩 보고 있는데 '그래도 생활은 계속된다(そして生活はつづく)'를 전체, 통으로 번역 해주신 은인(?)이 있어 [복통은 계속된다]편을 읽게 되었다. 아! 겐도 과민성대장증후군이구나, 정확한 병명은 기재되지 않았지만 우리끼리는 통하는 게 있다. '장 트러블'이 생활화 되어 있는 사람들은 그들끼리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여지껏 살면서 완벽하게 나와 같은 과민성대장증후군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2명 만났다. 1명은 우리 아빠고, 1명은 같은 일은 하는 또래의 여자 분이다. 만나지는 않았지만 이제 호시노 겐까지 3명이다. "저, 과민성대장증후군이예요."라고 이야기 하면 "나도 그래! 시험볼 때 배가 엄청 아파!" 라며 동조해주시는 분도 있지만, '아니요, 그건 신경증이구요. 과민성대장증후군은 다릅니다.'라고 이야기 하고 싶어도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이 싫어 네네 하고 말았던 터였다. 

 마치 내가 쓴 것 같은 그의 [복통은 계속된다]편을 보면서 써내려갈 글을 어떤 카테고리에 넣어야 할까 고민이 된다. 

 처음 장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건 24-25살쯤이었다. 삶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1년 동안 준비한 편입시험 당일 배가 너무아파서 더 이상 시험을 볼 수가 없었다. 무척 중요한 시험이었기 때문에 화장실을 가면 그대로 퇴실해야 한다고 했다. 엄청난 양의 영어지문을 풀어야 하는 시험이라 촌각을 다투어도 다 풀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시험이었다. 다시 시험에 복귀한다고 한들, 그 또한 의미가 없기도 했다. 결국 편입시험에 실패했다. 1년 동안 준비한 시험을 배가 아파 중간에 나오다니.. 물론 그 학교 이외에도 여러 학교를 시험 쳤고, 결국 편입하지 못한 것을 보면 배가 아파서라기보다 실력이 부족했다. 

 두 번째로 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느낀 건 27살 겨울이었다. 1월쯤 이었던가? 한 겨울 동생과 오션월드를 갔는데, 그때는 면허도 없고 오션월드 가는 방법은 오직 고속버스뿐이라 버스를 타고 갔다. 갈 때는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 오는 길에 일이 터졌다. 20분 정도만 더 가면 집과 가까운 역에 도착하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사실 출발한지 10분이 채 되지 않아 느껴진 복통이었다. 오션월드에서 서울 강남역까지는 1시간 30분 남짓, 1시간 10분을 나 자신과 싸워온 나는 결국 패배를 선언했다. 비가 오는 올림픽대로 한복판에 내려 가드레일을 넘어 한강둔치에 있는 화장실로 뛰어갔다. 동생은 비를 맞으며 캐리어를 들고 있었고 꽤나 충격적이었는지 아직도 잊을만하면 그 이야기를 한다.. 그 날 이후로 버스를 타지 못하게 되었다. 시내버스는 정거장이 많으니까 상관없지만 혼자는 타도 다른 사람과는 타지 못하고, 광역버스도 정말 피곤할 때는 '그래 타서 자면 되니까'라는 생각으로 1년에 1번정도 타는데, 고속버스는 여전히 탈 수가 없다. 배가 아플까봐 겁도 나고 고속도로 한 가운데서 내리고 싶지도 않다. 

 1년 뒤, 30kg넘게 감량한 다이어트시기에(지금은 꽤나 다시 쪘지만) 과민성대장증후군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도 그랬겠지. 먹는 건 없고 가끔 폭식하고 늘 피로했고, 심지어 추위도 많이 탄다. 추워서 배가 차가워지면 당연히 배가 너무 아프다. 중학생 시절부터 알고 지내다가 20대 초반에 만나 꽤나 오래사귀고 있었던 남자친구는 데이트만 나가면 화장실을 찾느라 바빴다. 그의 노력은 30대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20대 후반, 한번은 그의 친구들과 축구를 보러 갔다. 두 커플에 운전자 한명이었는데 우리 커플이 뒤에 앉게 되었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은 불안상태에서 더 가속되기 때문에 차가 밀리거나 화장실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면 죽어버릴 것 처럼 배가 아파온다. 도착 10분전 가득하게 밀린 도로를 보며 장은 또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 이제 도저히 못참겠어, 여기서 내릴래!!" 창피함을 무릎쓰고 이야기 하는 날 보며 "내 손 잡아"라고 손을 내밀어 준 남자친구의 손을 뿌셔버릴듯이 잡고 축구장에 겨우 도착했다. 얼른 화장실을 가라고 친구들이 이야기 해 주었는데, 이상하게 화장실에 가고 싶지 않았다. 

 '아, 그냥 불안증일까, 신경증일까, 집에 돌아갈 때는 어떡하지?'

 그 이후로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는 타지 못한다. 창피한 경험이었고 속상했다. 아주 가까운 거리나 나의 증상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차는 가끔 타지만 그마저도 중간에 내려 화장실을 가곤 한다. 택시도 마찬가지로 혼자는 타지만 여러 사람들과 타지 못한다. 여러 사람들과 타면 꼭 중간에 내려 역시나 화장실을 가고 만다. 2010년 이후 매년 동생과 자매여행을 다니고 있는데, 이듬 해 부산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이제 십분 후 이륙합니다"라는 안내멘트와 동시에 이륙하면 화장실을 갈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온통 지배했고, 결국 이륙직전 화장실을 갔다가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며 나온 적도 있다. 듣기만 해도 피곤하지 않은가? 이렇게 9년을 살아왔다. 이동에 필요한 어떠한 수단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야기다. 점술가가 나는 역마살이 많아서 이동할 일이 많다고 했는데, 너무 힘들게 이동해야 한다.

 이제는 차가 있어서 외근을 가거나 멀리 출장을 갈 때 아주 편해졌지만 차가 없던 시절에는 기차를 몇 번이고 갈아타고 출장을 가야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1-2시간은 기본으로 먼저 출발해야 했다. 동료들과 함께 택시를 타고 외근을 나가는 날에는 "죄송합니다. 저는 지하철로 갈께요."라고 말해서 동료들을 불편하게 한 적도 많았다. 왜 그들이 불편한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 중 한명이 "제 친구도 그런 친구 있어요. 그냥 우리끼리 가요"라고 말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이러한 증상 때문에 자차로 이동하지 못할 때는 주로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4호선의 경우 역 안에 화장실이 있는지, 밖에 있는지, 위치는 어디인지 잘 알고 있다. 지하철이라고 다를 게 없고, 언제 배가 아파올지 모르며 언제 화장실을 가게 될지 모른다. 친구들은 나와 이동할 때 한번씩은 “배아프다, 내려야겠어.”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고 동생은 이제 그 말을 지겨워한다. 아파서 아프고 싶은 것이 아닌데 미안하다. 그래서 따로 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면 10명 중 10명 모두 괜찮다고 같이 가자고 한다. 그래도 막상 내려서 시간이 지체되거나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나를 기다리는 건 곤욕이겠지.

 몇 년 전 부터 이러다간 연애도 결혼도 못하고 일도 못하겠다는 생각에 진지하게 치료를 고민해보았다. 병원에 갔지만 역시 원인은 찾을 수 없었고 장거리 운전에 진경제(장의 운동을 진정시켜주는 약)정도를 지어줬다. 금연은 당연히 했고, 커피도 마시지 않았고, 금주도 해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덕분에 금연에는 성공했고 커피도 잘 마시지 않는다. 마치 실험실에서 쥐를 대하듯이 계속적으로 나를 시험했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직접 앓고 있는 의사가 집필한 책도 사서 읽어보고, 복대도 해보고, 물도 많이 마셔보아도 역시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과민성대장증후군은 완치될 수 없다는 것만 알게 되었다. 완화하는 방법이라도 찾고 싶었지만 기껏해야 핫팩을 배에 붙이거나 따뜻한 물주머니를 끌어안고 있는 것이 전부다. 

 그래도 나름 노하우가 생겼다. 불가피하게 다른 사람과 이동수단을 타야할 때에는 전날 저녁부터 차를 탈 때까지 물만 마신다. 그리고 평소보다 1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서 배가 아프지 않더라도 화장실에 간다. 그러길 2-3번 하면 운 좋게 신호가 오기도 한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인 사람은 알겠지만 -호시노겐도 이야기 했지만- 기본적으로 화장실을 2번 이상 가야한다. 운 좋게 신호가 와서 가더라도 후에 배가 아파오는 경우도 많아서 화장실 가는 일을 몇 번 반복한다. 화장실을 들락달락 하다보면 ‘그래,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아프면 그건 진짜 어쩔 수 없는 거다.’라고 생각하게 되고 은근히 정신적으로 위안도 되는 것 같다. 

 장 트러블을 지속적으로 겪다보니 장과 관련된 트라우마, 노하우, 징크스를 모두 다 얻었다. 이동수단이 아니더라도 영화관, 강의, 회의등 화장실을 원활하게 못가는 경우에도 가끔 배가 아파온다. 아파보라지 하며 참을 때도 있고 참지 못해 뛰쳐나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같은 증후군이 있는 아빠가 굉장히 미안해하기도 한다. 난 아빠와 얼굴부터 속까지 모든 걸 닮았다. 이상하게 성격을 엄마를 닮았지만. 

 그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열심히 노하우나 만들자. 라는 입장이다. 채용이나 승진에 불이익을 받을까 이야기 하지 않은 적도 있고, 난 너무 심각한데 상대방이 심각하게 받아드리지 않아서 이야기를 하나마나 한 것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다만 이제는 그런 상황에서 창피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화장실 가는 게 창피한 건 아니잖아! 난 배변의 욕구가 있다고! 당당하게 말할 자신...은 아직까지 없지만 그래도 마음속으로 자책하거나 창피해하지 않아야겠다. 

 세상엔 생각보다 과민성대장증후군 동지들이 있다는 걸, 그 중 한 명이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라는 것, 그 분도 나와 스탠스가 같다는 것에 위안을 많이 받아서 앞으로는 창피해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창피해하지 않겠다. (그래도 창피할꺼야..)

*과민성대장증후군, 과민성대장염 여러 가지로 부르는데, 과민성 대장 증후군 [irritable bowel syndrome]이 맞는 용어라고 합니다.


호시노 겐 에세지 '그래도 생활은 계속된다, 2009'


공연할 때 안아파서 다행이야. 아파도 팬들이 다 이해하겠지만.

나도 공연가서는 안 아플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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