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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글

시모네타의 하루

4월의돌고래(프릴) 2018. 1. 12. 00:06

 긴긴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호시노 겐의 에세이를 읽었다. 여기저기 찾아다녀도 도저히 해석본이 없어서 힘들었는데, 건너건너 가다보니 달바금님의 블로그에서 번역본을 찾을 수 있었다. 호시노 겐의 에세이를 읽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본인의 시간을 쪼개어 번역을 했다고 하는데, 물론 영업도 한 가지 이유라고는 했지만 참 대단한 것 같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사람, 대단하다. 

 호시노 겐의 글을 읽으니 괜시리 나도 글이 쓰고 싶어졌다. 어렸을 때는 꽤나 글을 잘 쓰는 어린이 였는데, 상도 많이 받고 국어는 공부를 안해도 성적을 잘 받곤 했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이 좋아서 이과를 지원했고 그 와중에 글이 쓰고 싶어서 과학기자가 되는 길을 택했으나 터무니없이 과학을 못하여 심각한 진로패닉에 빠졌었던 나였다. 

 결국 엄청난 방황끝에 누군가를 가르치는 강사로 살고 있지만, 회사를 다니고 있는 지금은 교육컨텐츠 기획자가 더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그 일을 가장 비중있게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난 음담패설에 아주 강한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달바금님이 제대로 번역하고 싶지 않았다는 호시노 겐의 AV찬양 에세이도 재미있게 '상상하며' 읽었다. 성에 대해 그렇게도 개방적인(자신에게만, 남에게도 개방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글을 읽으면서 '일본 사람이라서 그런가?'라고 생각하기엔 인생의 바닥까지 가서 겪고 난 후의 세계관은 성적인 부분이 당연히 본질적으로 느껴졌겠지 싶기도 하다. 

 아침부터 정부융합과제 미팅때문에 우리나라 유수의 대학들이 참여한 미팅에 가게 되었다. '내가 이 곳에 있다니.. 우리 엄마가 이런 상황을 보면 놀라겠지'라고 생각하며 마치 엄마가 그 곳을 보고 있는 것처럼 상황을 관망했다. 꾸역꾸역, 정말 꾸역꾸역이라는 표현이 적당하게도 대학원을 졸업하지 않았다면 이런 상황이 가능했을까? 논문학기까지 3년의 대학원 생활 끝에 남은 학자금대출과 콧대는 어쩌고? 

 남들은 나에게 늘 충분하다고 말해주지만, 나만은 늘 내가 부족해보이고 열심히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3년이 지겹게 바쁜 생활이어서 작년 10월부터는 뭔가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쉬고 있을 때, 쉬는 것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좋으련만 쉬고 있는 순간이 그렇게 한심할 수가 없다. 

 어제는 대학원 후배언니가 논문을 쓰고 있는데 들여쓰기가 뭐냐고 전화를 걸어왔다. 글이 쓰고 싶어 노트북을 열면서 아, 나 들여쓰기 하고 있었던가? 하고 보니 들여쓰기가 왠말이야! 카테고리는 '글'이라고 제목지어놓고 들여쓰기도 안하다니 너 요즘 정말 무슨 생각하고 살고 있냐? 싶었다. 

 앞으로 글을 쓸 때는 꼭 들여쓰기를 해야지, 얼마 전까지 그랬던 것 처럼. 생각하면서 스페이스 바를 누르고 '긴긴'이라는 말로 글을 적기 시작했다. 잊고 있었던 것들이 상기되고 확장되는 좋은 경험이다. 늦은 밤 겐상의 에세이를 읽고 혼자 감성터지며 하고 있는 경험치고는 행복한 경험이다. 오랜만에 침대에 누워 다리를 세우고 노트북을 올려 글을 적어본다. 

 지금까지 쓴 글도 모두 들여쓰기 하고 싶지만 그건 천천히 하나씩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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